"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처럼 행동했대요."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통째로 사라졌어요."
"이건 마치 내가 아닌 것 같아요."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지나칠 수도 있는 이러한 경험들. 하지만 그것이 반복적이고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라면, 해리성 장애’일 가능성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해리성 장애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종종 극단적으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복잡하고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납니다. 이 글에서는 해리성 장애의 정의, 종류, 증상, 원인, 그리고 치료까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 해리성 장애란?
해리란, 기억, 정체성, 감정, 사고, 감각 등이 서로 분리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누구나 스트레스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멍해지거나, 운전하다가 목적지까지 어떻게 왔는지 기억이 안 날 때가 있죠.
하지만 해리성 장애는 이 현상이 훨씬 지속적이고 심각하게 나타나면서 삶의 기능을 떨어뜨립니다.
정신의학적으로 해리성 장애는 다음과 같은 3가지 주요 유형으로 구분됩니다.
1️⃣ 해리성 기억상실
특정한 사건이나 개인적인 정보를 기억하지 못하는 증상입니다. 일반적인 건망증과 달리, 외상이나 스트레스 사건과 관련된 기억이 갑작스럽게 사라집니다.
특징:
- 범위: 몇 분간의 기억에서 수년간의 기억까지 다양
- 갑작스런 실종 후, 다른 지역에서 발견되는 경우도 있음 (이 경우를 해리성 둔주라고 함)
- 기억이 사라졌다는 자각이 없을 수도 있음
2️⃣ 해리성 정체감 장애
가장 대중에게 알려진 형태로, 예전에는 다중인격장애라고 불렸습니다. 한 사람 안에 둘 이상의 별개된 정체성이 존재하며, 각 인격이 번갈아 행동을 통제합니다.
특징:
- 각 인격은 나이, 성별, 언어 스타일, 기억 등에서 완전히 다름
- 주요 인격이 어떤 인격이 나왔는지 기억하지 못함
- 자해, 우울증, 불안장애가 동반되는 경우가 많음
- 드문 질환이지만 심각한 외상 경험과 관련이 깊음
3️⃣ 이인증/비현실감 장애
자신이 몸에서 분리된 듯한 느낌(이인증) 또는 세상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현상(비현실감)이 반복적으로 나타납니다.
특징:
- 자신을 제3자 시점에서 보는 느낌
- 마치 꿈을 꾸는 듯한 현실감 상실
- 현실 판단 능력은 유지되지만, 감각의 이질감이 심함
- 청소년기에 시작되는 경우가 많음
+ 해리성 장애의 원인은 무엇일까?
해리성 장애의 가장 큰 원인은 심리적 외상(트라우마)입니다. 특히 어린 시절의 학대, 가정 폭력, 성적 학대, 전쟁, 사고 등의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이 주된 요인으로 지목됩니다.
주요 원인:
- 어린 시절 지속적인 학대 경험
- 가까운 사람의 갑작스러운 죽음
- 전쟁, 재난, 납치, 성폭력 등 생존 위협을 느꼈던 사건
- 정서적으로 고립되거나 공감받지 못한 환경
이러한 경험 속에서 뇌는 ‘생존 전략’으로 기억과 감정을 분리(해리)함으로써 고통을 피하려는 방어기제를 발동시키게 됩니다.
+ 해리성 장애의 위험성과 동반 질환
해리성 장애는 다음과 같은 문제들과 함께 나타날 수 있습니다.
- 자해, 자살 시도
- 알코올 및 약물 남용
- 우울증, 불안장애, PTSD
- 대인 관계의 심각한 문제
- 직업, 학업 수행 불가
이로 인해 진단과 치료가 늦어지는 경우 삶의 질이 심각하게 저하될 수 있습니다.
+ 치료는 가능한가요?
해리성 장애는 치료가 가능한 질환입니다. 단, 치료에는 시간과 신뢰가 필요합니다.
주요 치료 방법:
1. 정신치료(심리치료)
- 정신역동적 치료: 무의식적인 갈등을 탐색
- 인지행동치료(CBT): 부정적인 사고 패턴 교정
- 트라우마 중심 치료: 외상 사건에 대한 안전한 접근과 재처리
- EMDR (안구운동 둔감화 및 재처리): 외상기억을 줄이는 데 효과적
2. 약물치료
- 해리 자체를 치료하는 약은 없지만, 우울증이나 불안 등 동반 질환에 대해 항우울제, 항불안제를 병행하기도 합니다.
3. 안정된 환경 조성
- 규칙적인 수면, 식사, 스트레스 감소, 신뢰할 수 있는 관계 형성이 중요합니다.
💡 주의: DID(정체감 장애)의 경우, 강제적인 기억 회상이나 특정 인격 소환은 오히려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반드시 전문 심리상담사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치료가 필요합니다.
해리성 장애는 단순한 ‘이상한 행동’이 아니라, 극심한 고통을 견디기 위한 뇌의 생존 반응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반응이 일상생활을 방해할 만큼 반복되거나 고착화될 때 발생합니다.
누군가가 해리성 장애를 겪고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 안의 ‘이상함’이 아니라 그 사람이 겪은 상처와 고통의 반영일 수 있습니다. 따뜻한 관심과 이해, 그리고 전문가의 치료가 함께할 때, 해리는 점차 통합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